목차
3장 머릿속의 지식과 세상 속의 지식
제3장 머릿속의 지식과 세상 속의 지식
우리는 매일 수많은 물건과 기기 및 서비스를 사용한다. 각각은 어떤 특정한 방식으로 행동하거나 작동하는 것을 필요로 한다. 우리 지식은 종종 꽤 불완전하고 애매하고 또 틀리기도 하지만, 여전히 하루를 그런대로 괜찮게 살아간다. 제품을 조작할 때 우리는 머릿속의 지식과 제품이 보여주는 지식을 결합한다. 왜냐하면 어느 지식도 단독으로 충분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정밀한 조작에 필요한 지식의 모든 것을 전부 기억할 수도 없고, 기억할 필요도 없다. 예를 들어 지폐의 단위를 구분할 때 지폐의 세세한 사항은 기억하지 않는다. 주로 지폐의 크기나 색깔로 구분한다. 지폐에 어떠한 그림이 있으며 어떠한 일렬번호가 적혀있는지 기억할수도 없고 기억할 필요도 없다. 지폐를 잘못 지불하여도 계산이 잘못되었다는 피드백을 받을 수도 있다. 그래서 정밀한 조작에 필요한 지식은 분산되어 부분적으로 기억에, 제품에, 그리고 제약에 나뉘어 저장되어 있으며 이를 조합하여 활용한다.
부정확한 지식으로 정확한 행동하기
다음 네 가지의 이유로 정밀하지 않은 지식에도 불구하고 행동은 정확할 수 있다.
- 정보는 머릿속과 세상 속 모두에 있다.
- 높은 정밀성이 요구되지 않는다.
- 자연스러운 제약이 세상에 있다.
- 문화적 제약과 관습에 대한 지식이 머릿속에 있다.
행동은 내적 또는 외적 지식과 제약의 결합에 의해 인도될 수 있으므로, 어떤 제품을 사용하기 위해 학습해야 할 자료의 양을 최소화할 수 있다.
그러므로, 디자이너는 고객이 제품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을 때라도 사용할 수 있도록 제품 디자인에 충분한 단서를 넣을 수 있다. 머릿속의 지식과 세상 속의 지식을 결합하면 수행이 한층 더 좋아진다.
제3장은 머릿속의 지식이 세상 속의 지식과 어떻게 결합할 수 있는지를 보여줄 것이다. 기억에 관한 핵심을 간단하게 소개한다. 그리고 자연스러운 대응이 즉각 해석되기 쉬운 방식으로 세상 속의 정보를 어떻게 제시하는지를 논의하면서 이 장을 결론 지을 것이다.
지식은 세상 속에 있다
일을 하는데 필요한 정보를 세상에서 즉각 얻을 수 있다면 그것을 배울 필요는 사라진다. 하지만 작업을 완수하는데 충분한 지식을 기억할 필요가 있을 뿐이다. 예를 들어 타자를 치는 작업은 키보드 자판에 표시된 문자를 보면서 입력할 수 있으며 키보드 키를 외울 필요는 없다. 하지만 작업을 수월하게 완수하기 위해 키보드를 보지 않고 칠 수 있도록 훈련한다.
사람은 두 종류의 지식을 활용하면서 움직인다. 서술적 지식과 절차적 지식이다. 서술적 지식은 무엇에 관한 지식으로, 서술할 수 있는 정보에 관한 지식이다. 예를들어 “빨간 신호는 정지신호다.”, "대한민국의 수도는 서울이다."와 같이 서술적 지식은 쓰기도 쉽고 가르치기도 쉽다. 하지만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 절차적 지식은 어떻게에 관한 지식으로 어떤 일렬의 행위에 대한 지식이다. 예를 들어 바이올린으로 음악을 연주하는 지식이나 간단하게 문을 여는 지식도 절차적 지식이다. 절차적 지식은 표현하기가 어렵거나 불가능하고 가르치기도 어렵다. 대부분 시범을 보여주거나 연습을 통해 학습된다. 절차적 지식은 대체로 잠재의식적이고, 행동적 처리수준에 있다.
세상 속의 지식은 보통 쉽게 접근할 수 있다. 기표, 물리적 제약 그리고 자연스러운 대응은 모두 세상 속의 지식으로 작동하는 지각 가능한 단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환경을 구조화하여 무엇인가를 기억하는데 필요한 상당량의 지식을 환경이 제공하도록 만든다.
정밀성이 뜻밖에 필요할 때
사람들은 자신의 지식과 판단에서 정밀성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필요한 것은 세상 속의 지식과 머릿속의 지식의 결합이며, 이 결합이 판단을 명확하게 한다. 만약 결합을 혼란시킬 수준으로 환경이 변하지 않는한 모든 작업은 문제없이 진행된다. 예를 들어 오만원권 지폐가 처음 발행되었을 때 오천원권의 지폐와 비슷한 색깔로 인해 자주 혼동이 생겼었다. 하지만 지폐의 크기와 색깔의 진한 정도로 다시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정리하자면 세상 속의 지식과 머릿속의 지식이 결합하여 지폐를 구분하였으나 환경의 변화로 혼동이 왔고 변화한 환경에 맞춰 지식을 재결합하여 지폐가 혼동되는 문제를 해결하였다. 이처럼 기존의 환경을 변화시키는 디자인이 디자인의 관점에선 좋은 디자인일지라도, 기존의 디자인을 수용하여 사용하던 집단의 반발로 실패할 수 있다.
제약은 기억을 간단하게 한다
컴퓨터에 인터넷과 전원을 연결하는 위치를 기억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인터넷선은 전원선에 물리적으로 연결할 수 없고 전원선은 인터넷선에 물리적으로 연결이 불가능한 제약이 있기 때문이다. 만약 인터넷선과 전원선의 연결부분이 동일한 모양이었다면, 그래서 전원선을 인터넷선에 연결할 수 있었다면 연결하는 위치 기억에 따라 컴퓨터의 운명이 결정되었을지도 모른다. 이와 같이 물리적인 제약이나 문화적인 제약은 기억을 복잡성을 줄이고 단순화할 수 있도록 해준다. 만약 어떤 제품을 조립하는데 있어서 물리적으로 제대로 조립할 수 있는 방법이 하나가 아니라면, 제품을 잘못 조립하여 분해하고 재조립하는 과정을 반복하거나 제품을 제대로 조립할 수 있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기억해야만 한다.
기억은 머릿속에 있는 지식이다
많은 코드, 우편번호나 전화번호는 일차적으로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부담을 조금도 고려하지 않고 기계들과 디자이너들이 일을 더 쉽게 하기 위해 존재한다. 특히 보안 코드는 날이 갈수록 길어지며 복잡해지고 있다. 특히 보안 요건 중 많은 것은 불필요하며, 불필요하게 복잡하다. 그리고 사람은 그렇게 수많은 보안 코드들을 모두 외울 수가 없다. 이로 인해 보안 코드들은 보안 코드를 생성하는 사람들로 인해 점점 단순 형태로 외우기 쉽도록 변화하거나 패스워드를 외부에 기록하게 된다. 그래서 패스워드 요건이 더 복잡해질수록 시스템은 덜 안전해진다. 무엇인가를 너무 안전하게 하면, 덜 안전해지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그래서 생각해낸 방법이 인증자가 소유하고 있는 것과 기억하는 것을 요구하는 보안이다. 보안에 대해 이렇게 장황하게 설명한 이유는 보안이 주요한 디자인 문제를 제기하기 때문이다. 사람의 행동에 대한 이해만이 아니라 복잡한 기술을 필요로 한다. 여기에 심각하고 근본적인 어려움이 도사리고 있다.
기억의 구조
심리학자들은 크게 단기 혹은 작업 기억과 장기 기억으로 기억을 구별한다. 단기 기억과 장기 기억은 매우 다르고 디자인에서 서로 다른 점을 함축한다.
단기 기억 혹은 작업 기억
사람은 단기 기억에 정보를 자동적으로 저장하고 힘들이지 않고 기억할 수 있다. 그리나 정보의 양은 매우 제한되어 있고 정보의 사용 기한이 길지 않다. 방해로 인해 정신이 산만해지는 순간 단기 기억의 내용은 날아가 버린다. 그러므로 고객의 단기기억에 의존하여 디자인을 설계하지 마라. 굳이 고객에게 중요한 정보를 알려주고 단기기억을 활용해야 한다면 다양한 감각 양식을 통해 정보를 제공하자. 여러 다른 양식으로 정보를 제공하면 각 양식별로 단기기억에 분류되어 저장할 수 있다. 즉 각 감각에서 얻은 정보는 서로를 방해하지 않아 단기기억 방해를 최소화할 수 있게 된다.
장기 기억
장기 기억은 과거에 대한 기억이다. 일반적으로 장기 기억의 정보는 넣고 다시 끄집어내는데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경험을 정확한 기록으로 기억하지 않는다는 점에 유의하라. 오히려 기억을 복구할 때마다 기억은 재구성되고 해석된 조각들로 떠오른다. 그래서 기억에 왜곡이 생기거나 잡음이 생긴다. 장기 기억으로부터 경험과 지식을 얼마나 잘 떠올릴 수 있는지는 처음에 그 내용이 어떻게 해석되었느냐에 달려 있다.
장기 기억에서 주요한 어려움은 조직화에 있다. 우리가 기억하려고 하는 것을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사람들이 필요한 지식을 어떻게 기억해내는지는 아직 모르지만, 아마 어떤 종류의 패턴 대응과 필요한 지식과의 일관성을 검증하는 과정이 관여할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이름을 기억하려고 할 때 안다는 느낌은 있는데 떠오르지 않는 현상이나 어떤 이름을 찾았지만 틀린 이름이라는 느낌이 드는 현상이 기억하기 위한 패턴 대응과 지식을 검증하는 과정의 적절한 예시라 할 수 있다.
임의적인 것과 의미 있는 것에 대한 기억
임의적인 것에 대한 기억은 기억해야 할 항목들이 임의적이고 아무 의미가 없으며 항목 간에 이미 알고 있는 것과 특저한 관계가 없다. 임의적인 지식이란 의미나 구조가 없는 단순한 지식이다. 이러한 지식은 기계적인 암기를 필요로 하는데 매우 골칫거리다. 기계적인 암기는 어려워서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암기되 기억에 오류가 생겨도 기억의 무엇이 잘못되었는지에 관해 아무런 단서가 제공되지 않고 문제를 고치기 위해 어덯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아무런 단서가 없다. 잘못 디자인된 제품은 고객에게 임의적인 사용법을 기계적으로 암기해야 사용할 수 있도록 디자인되어 있다. 한편으론 기계적인 암기로 인한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인위적인 구조를 만들어 임의적인 연합이나 순서를 쉽게 외우려고 노력한다.
의미 있는 것에 대한 기억은 기억해야 할 항복들 그 자체로 또는 이미 알고 있는 것들과 의미있는 관계성을 이룬다. 자연스럽게 납득할 만한 구조를 활용하면 쉽게 외울 수 있다. 어떤 작업이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는 지식에 상응하여 이해되고, 해석되고, 통합될 때 기억하기 쉽다. 제1장에서 논의했던 개념 모형은 제품을 조작하는데 있어서 의미있는 해석을 제공하여, 제품의 사용법을 기억하기 쉽도록 보조한다. 하지만 개념 모형이라는 제품에 대한 해석 또한 지식이고 발견되어야 하는건 마찬가지다.
사람의 기억 방식에 대한 디자인에서의 함축은 분명하다. 제품 디자인을 통해 의미있는 구조를 고객에게 제공하는 것이다. 아마 가장 좋은 방법은 기억할 필요가 없게 만드는 것이다. 제품을 사용하기 위해 필요한 지식은 제품에 포함시켜라. 구식의 전통적인 메뉴 구조를 활용하라. 적절한 제약과 강제 기능, 자연스로운 좋은 대응 및 프드포워드와 피드백의 모든 도구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 사람들이 기억하도록 도와주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기억이 필요없게 하는 것이다.
근사 모형: 실제 세계에서의 기억
의식적인 사고에는 시간과 정신 자원이 든다. 이러한 전문적이고 숙달된 행동은 의식적 감시와 제어를 적게 할 수 있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의식적 추리의 필요성을 최소화한다. 생각을 단순화시키는 한 방법은 단순화된 모형을 이용하는 것이다. 부정확하더라도 목적에 근접한 충분히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게 해준다. 예를 들어 일상 생활에 대부분의 정확도는 근사치로 충분하다. 근사 모형은 충분히 좋은 정확성을 가진, 빠르고 쉬운 결과를 낳는 데에 가치가 있다.
머릿속에 있는 지식
미래를 위한 기억이란 미래의 어떤 시점에 어떤 활동을 할 것을 기억하는 과제를 의미한다. 즉 미래의 시나리오를 상상하는 능력을 말한다. 예를 들어 내일 아침에 원하는 시간에 일어날 수 있도록 알람을 설정하는 행위나 집을 나설 때 챙겨야 할 물건을 현관에 두는 행위 모두 미래의 어떤 활동을 하기로 계획한 것을 기억하기 위함이다. 이렇게 어떤 순간에 필요한 기억이 나도록 준비할 때 신호와 메세지가 필요하다. 무언가를 기억해야 한다는 것을 아는 신호와 정보 자체를 기억하는 메세지로 구성된다. 즉 무언가가 기억되어야 한다는 신호와 그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메세지를 모두 갖추어야 한다.
여러 머리, 여러 기기에서의 기억
교류적 기억 (transactive memory)은 각 요소가 조각 지식을 더 해서 천천히 가능한 선택지를 제한하고 혼자서는 기억할 수 없는 기억을 의미한다. 교류적 기억은 결국 상호작용을 통해 드러나는 기억이다. 예를 들어 인터넷에 단어를 검색할 때 정확한 단어가 생각나지 않더라도 조금씩 기억나는 대로 입력하면, 검색엔진이 제공하는 자동완성 단어 목록에서 원했던 단어를 찾을 수 있게 된다. 즉 검색엔진과 상호작용하여 기억해내고 싶었던 단어를 찾아낼 수 있게 되었다.
자연스러운 대응
가스레인지를 조작할 때 쉽게 겪는 문제가 어떤 스위치가 어디의 불을 점화시킬 수 있는지를 잘못 추측하는 것이다. 제일 자연스러운 대응은 불을 점화하는 곳 근처에 스위치가 있는 것이지만 화상의 위험이 있으므로, 바로 옆에 스위치가 달릴 수 없다. 그래서 최대한 화구의 배치와 비슷하게 스위치의 배치를 디자인한다. 그리고 디자인을 보조하기 위해 각 스위치마다 어디의 불을 점화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조그만한 그림, 기표가 그려져 있다.
자연스러운 대응은 관점과 비유의 선택으로, 문화에 달려 있다. 컴퓨터 디스플레이에서 텍스트를 스크롤하는 문제가 대표적이다. 스크롤은 텍스트를 움직이는가 아니면 창을 움직이는가? 애플의 맥 운영체제는 기본으로 창을 움직이기 때문에 스크롤이 반대방향으로 움직인다. 하지만 터치스크린과 위도우 운영체제는 스크롤의 이동을 텍스트의 이동으로 생각한다. 이와같이 비유의 선택이 상호작용을 위한 적절한 디자인이 무엇인지를 지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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